Wednesday, September 16, 2009

뉴스 속의 시 2: 평행하는 현실과 가면쓰기

뉴스를 수용하는 방식에 대해서 우리 얘기 하고 있는 거지. 충격, 슬픔, 조롱 등의 "이미 정해진 감정의 틀"의 문밖 정도 머물고 있다고 할 그런 수용방식을 뉴느 속의 시라고 얘기하는 거지 우리가. 다시 말하자면 주어지는 "현실"에 대한 뉴으스. 이야기를 어떻게 수용할 수 있을까 라고 묻는 거지? 남화연의 그러더군 여러 다른 몸을 빌어서 진실의 여러 가지 얼굴을 공유하고 싶은 거라고. 뉴스가 전달하는 현실이 다면의 실체라고 생각하고 우리가 뉴스라는 네러티브에 사용되는 여러 단어들을 재조립하는 활동을 하고 있는 거 겠지. 그런 행위를 통해서 또다른 현실을 창출해 내려는 거 아닌가.

여기서 문제는 그렇게 현실을 만들어내는 "시적" 활동의 방향성에 있다고 생각해. 부유할 것인가. 아니면 몇 만가지 모습을 하고 있던 간에 그런 현실에 개입해서 현실성이라는 걸 구축해 나갈 것인가. "작적하는 희극"이라는 작업이 바로 이 기로의 지점을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해.

90년에 도드라졌던 서울 미술계의 작가 군은 주로 부유하는 편이라고 봐. "부조리한 현실"에 대한 마지막 처방 혹은 희망의 끝자락이라는 듯이 그렇게 부유하는 기호의 체계를 만들어서 그것고 조각화 하고 도상화 하는 방식 말야. 그래서 종종 허무하거나 자폐스런 "몸짓"을 보이게 되는 거지.

"우리는 행복해요" . 과장된 이 문구의 정서적 자장을 크지만 그 정서를 통해 가능한 참여에의 힘. 나가가 배우고 알아 갈 수 있는 힘은 미약하다고 봐.
그러니까 우리는 "이민자 타투이스트"가 되고 싶은 거지, 킴벌리 블랑멩크가 아니라. 그렇다면 어떻게 기호들과 놀이할 수 있는 거야? 난 리서치와 배움과 콜레보레이션에 그 힘이 있다고 생각해. 거기에 대해서 좀 더 파보도록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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