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day, September 28, 2009

추상_일단 지하방

남화연의 드로잉이 생각난다.



지하방의 역사
박정희 정권 ‘방공호’가 거주공간으로
▣ 신윤동욱 기자 syuk@hani.co.kr



그것은 원래 ‘방공호’였다.
지하방은 방공호에서 시작됐다. 1970년 건축법 개정으로 주택의 지하층 설치 ‘의무규정’이 신설됐다. 당시 박정희 정권이 단독주택 지하에 방공호를 두라고 했던 것이다. 물론 ‘북괴’의 침입에 대비하자는 명목이었다. 이렇게 생겨난 지하층은 급격한 산업화와 더불어 수도권 인구가 가파르게 늘어나면서 불법 주거지로 변형되기 시작했다. 지하나 차고 등을 임의 변경해 집으로 쓴 것이다. 물론 한국전쟁 전후로 피난민 가운데 땅굴을 파서 사는 토막민이 있었지만, 현대적 의미의 지하주거는 방공호에서 시작됐다.
애초 불법이었던 지하주거는 1984년 지하층 규정이 완화되면서 합법화되기 시작했다. 1989년에는 단독주택과 다세대주택의 지하층 의무설치 규정이 완전 폐지됐으나, 90년엔 오히려 공동주택 지하층 건축기준 완화에 따라 기준에 맞으면 지하에 주거공간이 허용됐다. 더불어 80~90년대 다세대·다가구주택 건설이 빠르게 늘면서 (반)지하 거주는 수도권 어디에나 있는 거주 형태가 됐다. 1주택·1가구 정책이 오히려 불법 개조와 개축을 가져와 서민의 주거환경이 더 열악해지는 면을 인정해 정부의 정책이 건축 규제를 완화하는 방향으로 서서히 바뀌어왔다.
이렇게 고도로 인구가 밀집한 수도권에서 저렴한 거주공간을 찾는 서민의 욕구와 거주공간을 최대한 활용해 임대수익을 늘리려는 주택 소유자의 욕구가 결합해 지하거주가 생겼고, 정부는 거주공간 부족이란 현실에 떠밀려 법으로 지하거주를 허용한 것이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의 ‘2005년 주거기본권의 인권실태보고’에 바탕하면, 1988년에 이미 당시 서울 인구의 5%인 50만 명가량이 지하에 산다는 추정치가 있었고 1994년 서울의 다세대주택 거주가구의 20.1%가 지하에 거주한다는 연구가 있었다. 한국도시연구소는 2003년 연구에서 서울지역 지하거주 가구를 25만 세대로 추정했다. 이러한 수치는 이미 1990년대 이전부터 지하 거주가 광범위한 현상이었고, 2000년대까지 꾸준히 늘어왔음을 보여준다. 민변의 보고서에는 또 2001년 집중호우로 침수피해를 입은 9만2천 가구 중 80%인 7만 가구가 다세대 및 다가구주택 지하층에 거주하는 가구였다고 나오는데, 이는 지하층의 열악한 주거환경을 다시 한번 증명하는 것이다.
80년대 이후에 달동네·판자촌이 서서히 개발에 밀려 사라지면서 이곳에 살던 빈민은 지하로 스며들었다. 서울의 대표적 산동네 난곡의 개발 이후에 인근의 지하방으로 이주한 이들이 대표적인 경우다. 물론 80년대 건축된 단독주택과 연립주택 지하를 개조한 낙후한 지하방도 있는 반면에 90년대 이후에 지어진 다세대주택의 지하는 독립적인 시설을 갖추고 환기장치를 겸비한 곳도 있다. 이렇게 숨겨진 근대의 그늘에서, 움푹 팬 서울의 상처로 지하방은 확산됐고 진화했다.

No comments:

Post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