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업의 의미를 작가의 언어로 표현해 주시요라는 요청에 그녀는 이렇게 응답했다.
"시작은 세상의 어법(본래의 모습을 은폐한 수사들)을 충실하게 배우고 그것을 바탕으로 더 과장된 문장으로 이상한 이야기를 만들어 결국에 세계가 구사하는 어법의 이상함을 생각하게 하는 것이었죠. 이것은 좀더 생각해서 다시 나누고 싶어요."
"세계가 구사하는 어법의 이상함을 생각하게 하는 것"은 그러니까 시작일 뿐이다. 그 이상함은 예민한 직관만으로도 충분히 파악할 수 있다. 세계라는 의미는 점전 팽창하여 다층화, 다각화하고 있다. 이 팽창의 힘은 무엇보다 미디어-트랜스 내셔날 자본주의에 있다. 그런 세계를 수용하는 "개인"의 능력에 대한 도전은 과연 과도하다. 혼란, 절망, 무기력, 무지의 상태 등등은 존재의 조건이라고 해야 할까? 그렇다면 우리는 이 조건으로 부터 어떻게 해방될 수 있을까? 이 조건을 요리하는 방법은? 여기서 요리라 했음은 (조건을 구성하는) 재료를 살리되 동시에 변형하는 하나의 다른 맛나고 살이되고 피가되는 실체를 만든다는 것을 의미한다! (왠지 장기하와 얼굴들의 생각나는 데!)
법과 질서의 양가성에 대해서 생각해 보자. 사회, 세계의 팽창을 조절하는 도구로서 법과 질서가 "판친다". 여기서 판친다라는 동사의 사용은 의도적이다. 보통 "무질서가 판친다"라고 하니까. 그러나 질서와 법도 판을 친다는 것을 의식할 필요가 있다. 그 추상적인 뻣뻣한 기제가 개인의 변덕과 만나 판치는 형세들을 과연 부조리하다. 뉴욕에서 하루 유치장에 갇혔다는 남화연의 일화가 그러하고 압디왈리 압디카르 무사의의 일화가 그러하다.
"사실은 어린애가 막대기 짚고 뒷동산 오르고 있는데 마음속으로 자기는 에베레스트나 기암괴석에 오르고 있다고 착각/ 확신하는 거 그것처럼 사실은 그냥 ;이것이 이곳의 법과 질서이다' 라고 누군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는데 그거에 화들짝 놀라서 얼굴 가리고 다들 무서워 하면서 자신들의 허술한, 하지만 정교한 채 하고 있는 법과 질서의 무지(혹은 무질서)에 대하여 벌벌 떨고 있는 그런 이상한 그림."
"이것이 이곳의 법과 질서다". 남화연의 작전하는 희극에 삽입되는 구절이다. 텍스트에서 마치 이 문장을 선언하는 듯한 여왕의 몸짓을 그린 드로잉이 함께 했었지. 네가 읽은 것과 반대의 순서로 나는 이 구절을 소화하고 있어. 그러니까 "적"의 몸짓을 따라해 보는 거지 그러면서 적에 동등한 어떤 힘을 과시해 본다고 할까 혹은 적의 힘을 과소화해보려는 시도?
군사작전이라는 "저 먼곳의" 평행하는 현실. 그리고 이 군사작전에 대한 대중적 공유를 위한 마련된 장치의 일환으로 주어진 명칭. 이 명칭을 가면과 동작으로 번역해서 놀아본 것도 동일한 로직이겠지.
생각과 의심과 질문이 컨덴스된 그런 놀이. 그리고 그 놀이를 공동으로 펼치면서 작전의 공동성에 대응하는 공동의 공간을 만들어 낸다고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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