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막할 정도로 조용한 한밤중 시골 마을에 갑자기 동네 스피커에서 굉음이 울린다.
들판을 향해선 헤드라이트 불빛이 쏟아지고, 마을 주민은 양동이를 두드리며 악을 쓴다। "
우리가 나눴던 이메일에서 언니가 했던 말인 '뉴스 속의 시'가
내게는 아주 또렷한 그림자가 되었어। 우리가 나누는 글이 어떤 교육이나 계급에 상관없이 '읽힐 수 있는 ' 글이 된다는 건 아주 중요한 코멘트 같아। 사실 아까도 플랫폼에 가서 서점에 들렸는데, 강수미(또 이름 나오네) 씨의 도무지 딱딱한 글 안에 들어있는 의미를 잘 파악할 수 없었어।
신문을 만드는 사람들은 이렇게 말하지। "중 2도 이해할 수 있게 해라"
이 말을 나는 좋아하는 편은 아니고, 나 또한 쉽게 말하는 것을 혐오하는 쪽에 가까웠어।
신문의 말하기와, 예술작업의 말하기 방식 중에서
작전명은 어디에 더 가까울까।
우리가 이메일을 통해서 나누었던 대화의 조각들 중에서
우리는 우리의 대통령이 두명이나 죽어갈 때, 그리고 수많은 야생적인 사건들이 '뉴스 속의 시'처럼 우화되는 것들을 볼 수 있었어। 사람들은
이야기를 만들기 위해서, 이야기의 배경을 만들고 무대장치를 지어내고
이야기의 결말을 위한 서곡을 지어내। 그러니까। 노래는 들리지 않고
이미지는 고작해야 신문 프레스가 찍은 사진뿐이지만 무수히 보이지 않고 들리지도 않는 단서들이 그 안에 배경막처럼 깔려있어।
뉴스 속의 시를, 죽을 때까지 마주해야 하는 우리는
이미 정해진 감정의틀에서 더 이상 전진할 수 없는 걸까।
뉴스 속의 시에 관하여, 우리의감정은 어디에서 어디까지 지배당하고
조정당하는 것인지에 대해 질문하고 싶어।
뉴스 속의 시가 너무 웃긴다 깔깔깔।
살짝 미친 사람처럼, 뉴스 속의 시를 웃으면서 보곤 하지만
답답하기도 하기 때문에। 그 수사의 세계가। 그 상식적이면서도,
상식이 아닌 것도 같은 뉴스 속의 시들을। 집단이 이해하기를 바라는 글이면서,짐짓 아닌 척 개인의 심사에 호소하고 있는 이 서정과 서사의 관계들।
Wednesday, September 16,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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