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dnesday, September 16, 2009

아이스버그

-캐릭터들의 연기 방식의 미
/아이스버그, 자살한 왕들의 연기는 다들 무용인지 무술인지 댄스인지 정확히 알 수가 없었지। 그들의 연기는 영화나 무용이나 비디오나 어떤 예술 장르에 수용되기에는 기막히게도 어설픈 것이었다। 하지만 이 어설프고 덜 다듬어진 것들은 이 급작스러운 퍼포먼스를 기록하게 하는 유용한 대화방식 아니었을까।
/대화라는 것이 언어에 의해서만 가능한 것이 아니라 주변 공기와 상황, 카메라가 돌아가는 현장, 그리고 '자 도세요। '됐습니다/ '왼쪽으로 가세요, 아니오 오른쪽으로요' 라고 말하는 카메라 감독의 말이 들려오는 모든 현실상황이 뒤범벅된 활동들을 포함하는 것이라고 할 때। 이런 리얼리티에서 이들은 정말 숙련된 연기자인 것처럼 연기할 수 있었을까?

/난 그 어처구니 없는 몸동작이, 웃음이 터져나올 만큼 괴상한 짓을 하는 것으로 보이는 그 몸동작, 하지만 과장된 행동이라고는 여왕(네덜란드)의 표정 정도밖에 보이지 않는 그 나름 소박한 군더더기 없는 그 행동들이 이 작업의 주요한 표현법이라고 생각해। 왜냐하면 이들은 가면이나 아주 간소한 소도구들만을 통해서 이 희곡에 불려져 나온 거야। 이들에게는 그 어떤 성품이나 기존의 연기력, 몸짓, 독특한 몸의 동작을 가지고 있다는 식의 '필연성'이란 중요하지 않아। 이들에게 작전명이라는 캐릭터는 그냥 떨어진 거니까। 실제 수많은 전쟁과 살육과 정치적 사건들이
폭탄처럼 방향은 정확하지만, 그 방향의 근거가 터무니없이 우발적인 데에서 피어난 것이 많은 것처럼 말이야। 그러니까 이들이 각각의 작전명-캐릭터를 잘 짜여진 이미지로서 잘 구현해야 할 이유는 정말 없는 거지।

이들은 하지만 기어이 자신의 연기를 끝마치기 위해 노력하지। 왜냐하면
카메라가 쉴 때, 아니 정확히 쉴 때가 나오진 않지만, '컷' 하고 난 후의 이들이 몸이 좀 더 긴장이 풀어졌다는 걸 알 수 있잖아। 그러니까 이들 연기자들은 최소한 가면’에 적응하기। 정도의 노력을 여기서 보여주고 있어। 어린아이가 어른의 말, 어른들이 짜여놓은 질서를 흉내내려고
무의식중에 애를 쓰는 것처럼।

만약 정말 숙련된 기계체조선수나 무용가가 이 희곡을 구현한다고 했다면, 그건 정말 무대연극에서의 공연같은 한정된 시공간을 허락하는 예술장르로 보여졌을 거야। 그렇다면 그 시공간에 각각의 캐릭터를 부여받은 인물들이 급작스러운 퍼포먼스를 벌이게 되는 걸 '기록'하는 의미도 줄어들었을거야। 공연은 뭐랄까। 공연이 짜여진 희곡에서의 계획적인 연출을 드러낸다면, 지금 이 사람들의 이 희한한 연기 패턴은 더욱 이 작업의 구조, 나아가 작전명이 현실에서 구현되는 방식을 보여주는 것 같아। 구현되는 방식은 꼭 작전! 처럼 들어맞지 않는다는 것, 불순한 의도와 애매모호한 공기와 어설픈 인간들의 몸동작으로 인해, 떄로는 우매해 보일만큼의 반복 동작들- 작전명에 가려진 작전의 허술함과 우매함을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해

그런데 여기서 가면은 단순화된, 상징적인 이미지를 통해 작전명이라는
텍스트를 대변하는 것이되었어। 그렇다면 이렇게 가면을 쓰는 게 얼마나 힘이 있지? 누구의 힘을 획득하는 거지? 우리는 가면이라는 이미지를 쓰고 있지만, 그 이미지 안에는 무서운 정치적 함의와 권력과 잔인함 등등이 다 내포되어 있는 걸까? 그래서 그 가면 하나만 쓰고, 비닐봉지 따위의 무언가를 뒤집어 쓰고도 각 캐릭터들은 자신이 그렇다고 믿을 수 있는 걸까। 자살한 왕이나 아이스버그가 되었다고 말이야। 그 순간만은। 그 공동체 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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